베네치아 가면축제 인턴 3: 베네치아는 좁고 한국인은 많다!

인턴 4주차_

 

 

2월 15일.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되면서 전보다 바쁘지마는 결코 바쁘다고 할 수 없다. 산마르코 광장으로 바로 출근해서 커피 한잔을 했다. 이제 저 엄청난 인파 사이를 뚫고 가야겠지. 생각만 해도 재밌다 하하. 뻬르메쏘!!!! 라보로!!!! 백스테이지에서 무대 밑으로 나가고 있는데 광장에 '감사합니다' 라는 요상한 한국어가 울려 퍼진다. 설마? 하는 마음에 달려가니 무대에서는 한국어로 하자면 천하제일 마스크 경연대회 쯤인 Il Concorso della Maschera più Bella가 한창이다.

 

트위터 인스타 페이스북 업로드용 사진을 찍기위해 다른 팀에서 일하는 안나레나 (aka.앤)에게 간다. 앤이 있는 곳은 대회 참가자들의 신청을 받는 곳이라 무대 앞인데도 불구하고 소수의 인원만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기 때문. 

 

"헤이 앤!! 오늘 어땠어."

"현세, 오늘 가면대회 참가 원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중에서 고르고 몇 명을 돌려보내느라 너무 정신없었어. 지금 한국인 참가자 올라가 있는데 보여? 연기 공부하고 있대!"

 

 

Carnevale Venezia 2020, 한국인 참가자 둘

괜히 한국인이라는 소리에 얼굴도 모르면서 반가워서 관중 앞에 자리를 잡는다. 한껏 사진을 찍고 신나게 한국어로 인사를 걸었다. 하지만 다음 참가자가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바람에 한 마디로 끝내버리고 다시 일을 해야 하는 게 아쉬웠다.

 

2월 16일. 오전 행사부터 정신이 없다. 물건은 잘 잃어버려도 정신을 잃어버린 것 또 오랜만. 천사의 비행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몰려 all area 출입증으로는 어디든 들어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사진을 찍을 만한 곳은 그닥 남아있지 않았다. 천사의 강림이라고 네이버에 잔뜩 나와 있는 이 한 명의 사람이 점처럼 작게 둔갑해 광장의 하늘을 가로지르는 행사가 참 개똥 같은데도 불구하고 가장 큰 이벤트인 게 이해가 안 가는 중..

 

점심은 앤과 둘이 먹게 되어서 하드락카페 앞에서 추위에 떨며 배고파하는 모습이 불쌍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들어가있기는 또 아쉬운 것. 참 편한 거 싫어하고 호기심 그득해서 고생한다^^. 앤은 길거리에서도 괜찮은 코스튬을 보면 대회에 참가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 일도 하는데, 마침 한복을 입은 분들이 지나다녔다. 나에게 한국어로 물어봐 줄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달려가서 혹시 한국 분이세요? 라며 치근덕대는 내가 참,, 다시 생각해보니 아재 같다 ㅋㅋ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해 보이는 한복 사람 둘은 나의 질문에 대답도 않고 머쓱해져서 괜히 앤에게 흥분한 채로 투덜거린다.

 

"아니 나 이렇게 대놓고 무시당하는 거 처음이야. 어떻게 그래 내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저녁을 먹자 한 것도 아니고! 대뜸 악수를 청한 것도 아니고! 질문할 게 있다고 한 건데!! 너무한 거 아니야?"

 

라고 한껏 소리 질러놓고 민망하다. 속상한 마음이긴 했지만, 갑자기 말 거는 게 싫었을 수도 있고, 이유가 있을 수도 있는데 거참 너무 흥분했다 싶어서 괜스레 부끄럽다.

 

점심을 다 먹고 백스테이지로 갔는데 한복을 입은 무리가 있다. 아까 그 사람들이 있을 그룹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의 상황이 조금 더 이해가 갔다. 역시 세상의 모든 일엔 이유가 있구나..

 

공연이 시작되고 그래도 나름 잘 찍어서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나는 구린 휴대폰 카메라를 한껏 움직인다. 이 팀이 어느 단체인지 궁금해서 공연 담당 팀에게 물어본다. 내가 들은 답변은 자기들도 메일에서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잘 못 알아들었지만 우선 인원이 많아서 받아줬단다 하하. 진짜 이탈리아다움의 끝판왕이네 싶다.

 

 

Carnevale Venezia 2020, 한국 공연팀

사실 공연을 보고 너무 감동했다. 이전 무대 모두 스테이지가 텅 빈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우선 그랬던 무대를 꽉 채운 모습이 사람들을 압도했고, 많은 관광객도 엄청난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카니발 기간에 들은 모든 박수 중 가장 컸던 소리에 앤을 보고 씩 웃으며 코.리.아. 라고 해놓고 보니 민망하다

 

오늘도 잠들기 전 하루를 쓱 훑는다. 한복 사건에 대해서. 잠깐 감정이 격해지긴 했지만 금세 대수롭지 않은 일로 받아들인 스스로에 만족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결국 당사자의 상황을 알고 그들을 온전히 이해했다는 사실에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결과적으로 자세한 상황을 알진 못하더라도, 헤프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강현세가 되길 다짐하며 잠드는 오늘이다.